우리는 흔히 주가(주식 가치) 가 기업의 현재 실적(순수익 등)에 따라 오르내린다고 생각한다. 상식이다. 그런데 현실은 상식과 많이 다르다. 예컨대 1990년대 중·후반의 이른바 ‘닷컴 버블’ 당시 닷컴기업의 주가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적게는 수배, 많게는 수십~수백 배 뛰는 게 보통이었다. 액면가 1만원짜리가 수십만~수백만 원에 거래되었다는 의미다. 이 기업들의 현재(당시) 실적이 높든 낮든 상관없이 주가는 한동안 고공비행을 계속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간단히 설명하자면 투자자들의 ‘기대’ 때문이다. 지금은 ‘연간 10만원의 순이익밖에 못 올리는 기업이지만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내년부터는 연간 100만원을 벌어들일 것’이라는 ‘기대’이다. 그렇다면 이 기업의 주식은 얼마에 거래되어야 할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는, ‘기대 수익’(연간 100만원)을 벌어들이기 위해 얼마를 예금해야 하는지 계산하는 것이다. 예컨대 현재 은행 금리(연이율)가 10%라면, 1000만원을 예금하면 매년 100만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결국 해당 주식의 가치는 1000만원 수준에 형성된다(주가=(순이익/이자율)=(100만원/ 10%)=1000만원). 그렇다면 주가는 해당 기업의 ‘현재’ 실적이 아니라 그 주식의 ‘미래 가치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로 결정되는 것이다.

   
ⓒ시사IN 안희태
캐나다 토론토 요크 대학의 정치경제학 교수. 심숀 비클러와 함께 <권력자본론(Capital as Power)>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썼다.
이 과정을 성찰해보면, 결국 투자자들은 의도하지 않게 ‘시간 여행’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날아가 해당 금융자산의 가치를 본(예상한) 다음 이를 현재 가치(현재 주가)로 전환하는 과정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식이라는 ‘종이 쪼가리’는 ‘자본’, 즉 ‘돈을 낳는 돈’(주식)으로 태어난다.

국제 정치경제학자 인 캐나다 요크 대학 조나단 닛잔 교수와 이스라엘 연구자 심숀 비클러는 이 과정을 ‘(미래) 미리보기를 통한 자본 만들기(forward looking capitalization)’라고 명명한다. 이에 반해 기업의 ‘현재 실적’으로 주가를 결정하는 경우는 ‘(과거) 돌아보기를 통한 자본 만들기(backward looking capitalization)’가 될 것이다. 기업의 현재 실적은 사실 ‘과거의 실적을 지금 발표한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경우 ‘돌아보기’를 적용하면 해당 주가는 1000만원(‘미리보기’의 경우)이 아니라 100만원(현재 순이익 10만원/이자율 10%)에 불과할 것이다.

두 형태의 ‘자본 만들기’ 중 ‘미리보기’(forward-looking)가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메커니즘이라고 닛잔과 비클러는 주장한다(두 사람의 견해는 bnarchives.yorku.ca/185/ 참조). 이 ‘미리보기’를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과 행동에 자연스럽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미리보기’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공기 같은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그런데 닛잔과 비클러는 이 ‘미리보기를 통한 자본 만들기’ 개념을 통해 현재의 금융위기에서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의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성을 발견한다. 9월30일 열린 ‘지구적 금융·재정 위기와 한국 시민사회의 과제’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한 닛잔 교수를 만나 그의 논리를 추적해보았다.


이번 위기, 정말 그토록 심각한가.

자본주의는 원래 위기로 가득한 체제이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항상 기업의 이윤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이자율이 오르지 않을까, 돌연 리스크가 발생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다른 위기 국면에서 투자자들이 ‘자본주의 자체의 존속’을 우려한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 자본주의의 지배층들이 자신감을 잃고 체제의 존속 자체를 걱정하는 시스템 차원의 위기 상황이다.

당신과 비클러는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미리보기를 통한 자본 만들기’를 제시해왔다.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게 됐나.
‘미리보기를 통한 자본 만들기’의 초점은 현재의 이윤과 리스크가 아니라 미래의 이윤과 리스크이다. 이런 과정이 미래에도 끊임없이 지속될 것으로 사람들이 믿어야 체제 유지가 가능하다. 만약 모든 투자자가 ‘미리보기를 통한 자본 만들기’가 50년 안에 멈출 것으로 믿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금융자산의 미래 가격이 계속 하락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므로 투자자들은 50년 뒤가 아니라 지금 모든 금융자산을 시장에 내놓고, 이에 따라 대폭락이 발생할 것이다.

   
ⓒ시사IN 안희태
자본주의 위기는 격렬한 ‘계급 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위는 쌍용차 사태 당시 경찰 진압 작전.
‘미리보기’는 왜 ‘자본주의’가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메커니즘인가. ‘현대 자본주의’는 대충 언제부터이며, 그 이전에는 어땠나.

‘미리보기’의 기본 원리가 나온 것은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20세기 초까지 본격화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투자자들이 주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안정적 수익, 즉 배당금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주식 가격은 기업의 ‘현재 이익’(높을수록 배당금 지급 능력도 높다)에 따라 형성되었다. 말하자면 ‘돌아보기를 통한 자본 만들기’다. 그런데 주식회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20세기 초 이후 ‘미리보기’는 ‘돌아보기’를 대신해서 점점 더 자본주의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발전하게 된다.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20세기 초에 이미 ‘미리보기를 통한 주식가격 결정’을 주창했다. 20세기 중반에는 벤저민 그레이엄과 데이비드 도드 같은 사람들이 유명한 저서 <증권 분석>을 통해 ‘주가는 과거나 현재의 이윤이 아니라 미래의 이윤 흐름에 따라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후 ‘미리보기를 통한 자본 만들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 원리로 정착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자기 주관에 따라 지겨울 정도로 ‘자본주의 붕괴론’을 제기해왔다. 당신은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있나.
한 체제의 존폐에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체제 지배층의 ‘자신감’이다.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복종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하면 그 체제는 안전하다. 그러나 자신감을 잃으면 잠재적인 체제 붕괴가 시작된다. ‘현대 자본주의’의 경우, 지배층의 자신감은 ‘미리보기’를 통해 표현된다. ‘미리보기’가 잘 진행된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지배층이 갖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지배층의 자신감을 객관적으로 나타내는 지표가 있다.

그 지표를 소개해달라.
나와 비클러는 1871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미국 ‘S&P500 지수’의 주가와 ‘주당 순이익(EPS)’의 움직임을 검토한 바 있다(주당 순이익은 해당 기업의 연간 수익을 총주식 수로 나눈 것으로 기업의 ‘현재 이익’을 나타낸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주가와 순이익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상관계수의 값도 ‘양’으로 매우 높아 0.72에 이르렀다(상관계수가 양이면 주가와 순이익이 같이 올라가고 같이 떨어지며, 0.72라는 것은 함께 움직이는 정도가 매우 높다는 의미). 1차 세계대전 이전은 주가가 기업의 ‘현재 이익’을 반영하는 ‘돌아보기’의 시대였으니, 이는 당연한 이야기다.

그럼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주가와 순이익이 함께 움직이지 않나.
그렇다. 주식과 순이익의 상관계수가 1차 세계대전 이전의 0.72에서 0.35로 급격히 떨어진다. 심지어 반대로 움직이기도 한다. 예컨대, 1972 ~1974년의 스태그플레이션기에 이윤은 42% 증가하는 반면 주가는 43% 폭락한다. 1930~ 2000년의 주가-순이익 간 상관계수는 심지어 마이너스 0.15이다. 투자자들이 현재의 기업 수익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주식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주가와 현재 이익 간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자본주의의 핵심 메커니즘은 ‘돌아보기’에서 ‘미리보기’로 전환한다.
당신의 ‘미리보기’론에 따르면, 1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체제는 줄곧 ‘미리보기’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였고, 이에 따라 지배층의 자신감도 굉장히 강했다는 것이 되겠다.

그러나 이런 트렌드에서 벗어나는 두 차례의 ‘역사적 예외’가 존재한다. 바로 1930년대와 ‘2000년~현재’이다. 이 두 시기에는, 주가와 순이익이 밀착해서 함께 움직였다. 상관계수도 1930년대에는 0.90, 2000년 이후엔 0.65에 달하고 있다. 1929년 금융시장이 붕괴하자 자본주의 지배층들은 ‘미리보기’에서 ‘돌아보기’로 전향한다. 더욱이 당시의 자본주의는 볼셰비즘(레닌주의)과 파시즘의 체제 도전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렇게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데 ‘미리보기’, 즉 미래 예측에 나설 여력이 있었겠는가. 결국 자본주의 지배층들은 자기들의 지배 능력과 미래에 자신감을 잃고, 미래가 아니라 ‘지금 존재하는 것’, 즉 기업의 현재 이익에 기대게 된 것이다. 이는 갑자기 ‘미래 수익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이런 분위기는 1939년에 이르러서야 극복된다.

어떤 수단을 통해 극복했나.
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규모 전쟁과 복지국가 등으로 체제를 구조조정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부활이 가능했다. 그래서 1939년 이후의 통계 수치를 보면 자본주의 지배층의 자신감이 보인다. 심지어 기업 이윤은 치솟는데 주가가 수직 강하하는 현상까지 나타난다. 자본주의 지배층들이 다시 미래를 보기 시작했고, 이런 흐름은 60여 년간 지속되었던 것이다.

이제 1930년대와 2000년대를 비교할 차례다.
1939년부터 2000년까지 수많은 위기가 있었다. 스태그플레이션, 국제적 갈등, 혁명 등이다. 그러나 이런 위기들은 그냥 ‘보통 위기’였고, 자본주의 지배층의 자신감을 해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2000년 들어 ‘기계’가 멈춘다. 1939~ 2000년 사이, 주가와 순수익 간의 상관계수는 마이너스 0.15였다. 두 지표가 독립적으로 놀았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에서 2010년 3월 사이의 상관계수는 0.65까지 올라간다. 주가와 순이익이 다시 같은 방향으로 밀착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이 기간 중에는 상당한 호황기가 있었음에도 주가가 순이익을 따라 움직였다. 1930년대처럼 자본주의 지배층들이 다시 ‘돌아보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현상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신의 말이 맞다면, 자본주의 지배층이 그토록 막막해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자본 만들기’가 ‘유리 천장’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지배층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다.

그 ‘유리 천장’이란 뭔가.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경제를 봐라. 자본 측에 유리한 소득 재분배가 실현되었다. 국민소득에서 자본의 몫(세전 이윤과 이자)이 1930~1940년대의 12%에서 2000년대에는 17%로 뛰었다. 법인세는 1940년대의 55%에서 2000년대에는 30% 이하로 내려갔다. 1980년대 초 이후 인플레이션율도 떨어졌다. 주식시장의 발전에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금융시장의 규모가 급속히 커졌다. 전체 금융시장 규모가 국민총소득보다 3배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자본에 유리한 소득재분배’ 등의 방법을 더 이상 사용하기 힘들게 되었다는 데 있다. 예컨대 ‘자본의 몫’이 국민소득의 2%일 때 4%로 두 배 올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그러나 이미 20%에 달하고 있는데 40%로 두 배 올리기는 쉽지 않다. 법인세율이 50%라면 낮추기 쉽겠지만, 30%에 불과하다면 감세도 쉽지 않다. 결국 자본주의 지배층은 오히려 그동안의 성공 때문에 더 이상 상황을 개선할 수 없는 ‘유리 천장’에 도달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1930년대처럼 2000년대의 위기도 극복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지금 유일한 해결책은 이른바 ‘전체 파이’를 급속히 키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그리 쉽지 않다. 경제성장률이 1975년 이전에 비해 하향 추세이기 때문이다. 1990년 이후 ‘신경제’ ‘하이테크’ ‘지식 혁명’ 등의 담론과 신자유주의적 민영화, 이머징 마켓의 개방 등으로 ‘자본주의가 부활한다’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피크오일’(석유의 산출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담론) ‘기후변화’ 등 새로운 거대한 위협들이 자본주의에 도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자본주의의 대표 이데올로그들마저 자기 체제와 이념에 대한 불신을 공공연하게 털어놓고 있다. 한때 ‘연방준비위원회(미국 중앙은행)에 재림한 신’으로 불리던 앨런 그린스펀 같은 사람과 주요 경제학자들, 저널리스트들이 ‘우리의 이데올로기가 붕괴했는데 대체물이 없다’ ‘무엇이 진행되고 있으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등 절망감을 표시할 정도다.

결국 파국이 올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인가.
자본주의가 이번 시스템 위기에서 생존할 가능성은 있다. 물론 생존하려면 전체 권력구조를 재구조화하는 엄청난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지배층이 현재의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른바 ‘계급투쟁’이 치열해지고 1·2차 세계대전 같은 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만약 ‘현대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세력들이, 실현 가능하고 바람직한 진보적 대안을 내놓는 데 실패한다면, 현재 상황은 시스템 붕괴와 모든 계층의 공멸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